<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어> ‘아름다운 세상 불국토를 만듭시다’
오늘은 온 누리가 경축하는 불기 2561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신 오늘, 부처님의 탄신을 경축하며 지혜의 등불을 밝히고자 한마음 한 뜻으로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과 사부대중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흔히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어떤 마음이기에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는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물든 마음과 물들지 않은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물든 마음을 생멸심(生滅心)이라하고, 물들지 않은 마음을 진여심(眞如心)이라고 합니다. 물든 마음은 감정이나 생각, 갈망에 의해 옳고 그르고, 예쁘고 밉고, 착하거나 착하지 않다는 마음이며, 이 물든 마음 때문에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늘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갈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도무지 만족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물들지 않은 마음은 어떤 의도도 갖지 않는, 존재 그 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여여(如如)입니다.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든가요.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분별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어느새 벌써 분별이 들어가고, 상대방의 의도를 해석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남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고 경쟁하며 우열을 가립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 혼란합니다. 정치나 경제, 교육, 문화, 어느 한 구석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습니다. 소위 최순실 게이트다 해서 온통 뉴스에 도배를 하고, TV에 최순실 벗겨진 신발이 명품이라 해서 회자가 된 적이 있습니다. 명품으로 몸치장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입니까? 품행이 반듯해야 명품이지 마음속에 탐욕이 가득한데 어디 명품이 되겠습니까.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에서 눈을 떠야 합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 53선지식을 찾아 나선 선재동자, 그러나 진리의 보살이 화현한 곳은 출발한 그 자리였습니다. ‘행행본처(行行本處)요 지지발처(至至發處)라’ 갔다 갔다 하지만 본래 그 자리요, 왔다 갔다 하지만 떠났던 그 자릴세. 원래 도착 할 곳이 없는 게 불교입니다. 내 생각이 과거와 미래로 종횡무진하며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때론 기쁘고 때론 괴로워할지라도, 그 또한 변치 않는 현재의 내 마음 위에 그려진 인연의 풍광일 뿐입니다. 내 마음은 인연 따라 그 모든 풍광들이 나타나고 사리지고 하는 텅 빈 공간일 뿐입니다. 무안종사(無眼宗師)들은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여 현재의 삶을 놓친다고 난리지만 밝은 눈으로 보면 그 또한 현재의 삶으로 한 세월도 버릴게 없습니다. 지금 있는 곳이 과거의 곳이요, 또한 미래의 곳인데 어디 갈 데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고 싶으신가요? 그럼 행복 하세요. 당신 스스로 막지 않는 한 아무도 말리지 않습니다. 행복이란 물건을 만든 사람도 없고 본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만들어 쓸 따름입니다. 행복은 지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직 내 생각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게 행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자물쇠를 열수 있는 만능의 열쇠입니다. 우리 중생들의 내일은 결코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가 가장 중요하고 여기서부터 변화를 해야 합니다. 내가 있는 이 곳에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쓰는 물의 귀함을 못 느끼다가 단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물의 귀함을 의식하듯 진실이 가까이 있음에도 그것을 쉽게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어떤 남자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와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누군가 침대 밑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침대 밑으로 가면 누군가 침대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칠 지경입니다.” “당분간 치료를 받아야 되겠군요. 매주 두 번씩 오세요.” “치료비는 얼마나 됩니까?” “한 번 올 때마다 10만원입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더 이상 의사를 찾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 남자를 만났습니다. “왜 병원에 다시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만 원에 고쳐주었는데요.” “어떻게요?” “침대 다리를 없애라고 하더군요.” 어떻습니까? 진리는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진리의 현현(顯現)입니다. 진리는 내 옆에 있고, 내 생활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 평범하고 예사로운 일상의 마음이 인간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곧 도(道)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그래도 갖추고 있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대로가 중생이고, 이대로가 부처입니다. 별도의 공력을 빌려서 부처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키가 크면 키가 큰 그대로, 키가 작으면 키가 작은 그대로 부처입니다. 부처를 중생으로 만들지도 않고, 중생을 부처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여(如如)할 뿐입니다. 여여는 분별이 끊어진 마음 자리이고 이것이 바로 진여(眞如)이고, 불성(佛性)입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모든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바로 이 알음알이의 분별심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분별심을 여의고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 불국토를 이루어 갑시다. (대흥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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