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소를 잡아먹는 세상’ 이는 ‘소를 팔아서 다른 소의 사료값에 쓴다’는 한우사육 농가들의 자조 섞인 한숨 속 급기야 농부가 죽음을 택했다. 최근 경북 예천의 한 한우사육 농가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생전에 번식우 150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고인은 우시장에서 1월 19일 거래된 수송아지 평균값이 295만원으로 송아지들이 막 태어났을 시점인 지난해 7월 수송아지 평균값이 403만원 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가격이 무려 26.8%나 폭락한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 수송아지 값이 205~290만원대로 떨어졌고, 이런 가격이 새해에도 이어지면서 이 농부는 절망했고 각종 사육시설 투자로 부채까지 쌓인 상황에 희망을 잃고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 라는게 언론 보도다.
지금 한우 산지 가격이 폭락하면서 사육 농가들이 생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최대 위기에 처해졌다. 한우 가격이 지난해 1월 말만 하더라도 암소(50개월령 700kg기준) 한 마리당 700만~800만원대에 거래 됐는데 1년여 만인 올 1월 현재 400만~500만원까지 급락세를 보이면서 곳곳에서 축산농가의 시름이 이어지고 있다.
축산농가 뿐만 아니라 축산 전문가들도 2013년 소값파동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소값파동의 원인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배합사료 값이 71.4%나 폭등하면서 생산비가 2012년보다 50% 정도 올랐으며, 여기에 사육두수 증가, 금리인상, 소비위축 등 많은 이유가 복합됐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그러나 한우협회는 정부가 지난해 7월 물가안정 이라는 명목아래 할당관세를 적용, 연말까지 무관세로 쇠고기 10만t을 수입한 것이 값 하락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한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우 생산량이 26만4000t이었음을 감안할 때 10만t은 막대한 물량으로 아직까지 소화되지 못하면서 한우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우값을 나타내는 도매값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지만 소비시장에는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축산물 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 도매값은 2021년 9월에 1kg당 2만2천620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같은해 12월 2만639원을 기록했고, 2022년 9월에 2만53원으로 하락한 후 12월에는 다시 1만6천397원까지 내려갔다.
반면 소비자값은 등심 1등급 1kg기준으로 2021년 9월 10만3천40원에서 같은해 12월 10만8천780원, 그리고 2022년 9월 10먼660원에서 같은해 12월 9만9천580원으로 집계됐다.
한우 도매값은 지속해 떨어졌지만 소비자 값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1kg당 10만원을 기준으로 등락하는 모양새를 이어가며 요지부동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난해 12월을 놓고 비교할 때 한우 도매값은 전년대비 20.3%나 폭락했지만 소비자 값은 같은 기간 8.5% 내리는데 그쳤다.
한우 도매값과 소비자 값의 차이가 크면서 결국 대형마트는 22.2%, 농가의 경우 이익률이 고작 2.9%라는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지만 현행구조상 소비자가 직접 도매를 이용할 수 없고 여기에 경기침체와 금리인상, 고물가 등으로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결과적으로 한우값을 추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축산농가의 주장이다.
안성지역은 옛부터 축산지역이라 할 정도로 축산농가가 많다. 지난해 말 기준 한우 사육 농가는 1천3명이며, 이들이 6만3천360두를 사육하고 있는데 여기에 육우와 젖소를 합하면 총 1천525 농가에서 10만3천193두를 사육,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한우 사육 농가들은 “경북 예천의 축산농가 자살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도 동질감 때문만은 아니다.
안성시와 나아가 축산당국은 풍전등화의 한우 산업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해법을 조기에 찾아야 한다.
한우 축산업은 우리 농업의 근간으로 한우가 무너지면 농업도 무너지게 된다. 한우 사육 과정에서 나오는 분뇨와 부산물은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퇴비로 사용되고, 벼농사에서 생산되는 볏짚은 한우 사육에 없어서는 안 될 조사료(건초, 짚 등 섬유질 사료)로 이용돼 친환경 퇴비와 액비를 만들면서 순환 농업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우생산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일시적 한우 수매를 통한 가격 안정 △사료가격 인상분 차액지원 △범정부 차원의 소비 대책과 소비자 할인 쿠폰 지원, 군납, 기업급식 확대 △소비촉진을 위한 유통단계 가격 연동 재추진 등에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안성시는 축산지역으로 ‘축산이 무너지면 지역이 죽게 된다’는 신념으로 위기에 처한 한우 농가를 위해 조사료 자급률 향상 대책과 소비촉진, 사육기자제 지원 그리고 올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제에 쇠고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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