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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기념관내 유품들 |
△안주근 의사 흉상 |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안고 귀국하는 정림 큰스님 |
중국 뤄순감옥 현지서 안의사 유해 발굴한 정림 큰스님
‘늦었지만 안 의사 기념관 건립 매우 잘한 일’
강제 징집되어 일본서 타계한 도공들을 위해 위령제도 봉행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가 조선 식민지배의 주도자인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적격한 사건을 기린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19일 중국 하얼빈역에 마련됐다. 한국 정부는 중국 하얼빈시와 하얼빈시 철도국이 이날 하얼빈역 귀빈실에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 을 개관 했다고 밝혔다. 기념관은 하얼빈역 귀빈실을 기반으로 200㎡ 크기로 만들어졌으며 이 기념관에는 안 의사 일생과 사상을 담은 사료가 전시돼 있다. 또 기념관 내에는 안 의사가 이토히로부미 저격 현장을 조망 할 수 있도록 돼있다.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한 안의사 기념관은 중국 하얼빈시 정부가 직접 관리하며 안 의사의 삶과 당시 거사에 대한 설명 자료와 관련 사진들이 함께 전시됐다.
안 의사 기념관이 설립된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는 후문. 지난해 6월 한·중 정상 특별오찬 당시 박 대통령은 하얼빈역 의거 현장에 기념관을 설치해 달라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요청했고, 이후 시진핑 주석의 지시에 따라 하얼빈 정부는 이에 기념관을 건립했다. 그동안의 역 플렛폼에 안 의사의 거사 장면만 표시돼 있었다. 기념관 설립과 함께 거사 장소의 천정엔 ‘안 의사 이토히로부미 사살 사건 발생지 1909년 10월 25일 이라고 설명만 나붙어 있었다. 기념관 설립과 함께 거사 장소의 천정엔 ‘안 의사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시 1909년 10 월 26일이라는 설명이 새롭게 게시됐다. 또 기념관의 출입문 위엔 거사 시각인 오전 9시 30분 멈춘 대형 시계가 걸렸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하얼빈역에 안 의사 기념관을 세운 것은 큰 변화로 받아 들여 진다.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제 침략으로 커다란 피해를 봤지만 일본의 관계를 고려해 그동안 안 의사 기념관 설립에 소극적이었지만 최근 일본 아베 정부가 출범한 뒤 역사적인 문제 등으로 갈등이 증폭되자 안 의사 기념관 건립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안 의사는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영웅으로 여긴다. 새 기념관 개관으로 우리 국민은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기념관 맨 끝엔 안 의사의 유언이 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하여 다오” 대한민국의 소식이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다” 라는 위훈이 게첨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에 대해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중국 뤄순까지 방문했던 영평사 정림 큰스님은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강제 국권침탈과 식민통치를 한데 맞서 한국은 물론 아시아 모든 인민이 해방을 위해 노력한 애국 지사다” 라면서 “늦은 감은 있지만 기념관 건립은 매우 잘한 일이다” 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애국 열사인 안중근 의사 90주기를 맞아 안 의사가 수감됐던 중국 뤄순 감옥을 방문해 안 의사의 묘에서 흙 한줌을 들고 한국에 들어와 정성 들여 제를 지낸 정림 큰스님에겐 이번 안 의사 기념관 설치는 큰 의미가 있다.
정림 큰 스님은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대한 제국의 교육가, 사상가, 독립운동가, 의병대장으로 일제로 부터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적 사명가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면서 “수 차례에 결쳐 결사대를 조직해 각처에서 항전하다가 우리나라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이토히로부미가 만주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만주의 각 역 근처에서 이토히로부미 등을 저격하려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히로 부미가 열차 안에서 러시아 재무대신인 코코프레체프와 회담을 가진 후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고 열차로 돌아가는 것을 권총 3발을 쏴서 저격 하는데 성공했다” 면서 “안 의사는 저격후 러시아 어로 코래나(우리 한국만세라는 뜻)를 크게 외치고 일본과 러시아 공안들에게 체포되었다” 고 저격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안 의사는 일본 검찰조사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는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많은 한국인들을 학살 한 죄,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등 15가지 죄명을 제기하며 “그래서 죽였다” 고 당당히 말했다며 결국 일본제국 법원에서 안 의사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 당했다” 고 말했다.
정림 큰스님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2000년 4월 안 의사가 순국한 뤄순 감옥에서 동쪽으로 500m 가량 떨어진 뤄순감옥 구 묘지 한켠 유해 매장지로 추정된 곳에서 한 줌의 흙을 정성들여 들고 귀국했다. 정림 큰스님이 안 의사 묘지에서 한 줌의 흙을 갖고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KBS기자들이 직접 김포 비행장을 찾아가 유해를 운구하는 정림 큰스님의 모습을 생방송했다.
정림 큰스님의 애국 애민정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3년 12월 31일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타국땅에서 한을 품고 생을 마감한 도공들 수천명을 위해 “400년의 통한의 한을 내려놓으시고, 극락왕생하옵소서” 일본현지서 이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 주는 등 많은 애국적 일을 몸소 행해왔다.
일본이 안중근 의사의 넋을 분산하기 위해 코와 귀를 각각 다른 곳에 묻었다는 말을 듣고 정림 큰스님이 일본 곳곳을 찾아다니며 제를 성대히 지내주기도 했다. 지금 중국의 뤄순 감옥과 묘역은 황폐화되고 또 개발로 당시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일반에 개방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의사의 유묵들이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모두 약지가 없는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다. 유묵 맞은 편엔 “양국(한국-중국) 인민의 항일 투쟁이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격살로 비로소 시작됐다” 고 한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의 찬사를 비롯해 쑨원과 정제스의 글이 걸려있다.
하얼빈역 귀빈 대합실 일부를 고쳐 만든 200㎡ 규모의 기념관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기념관 한편엔 안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쏘아 죽이려 1909년 10월 2일 밤 9시 하얼빈역에 내리던 순간부터 의거일과 뤼순 감옥 압송 전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한국어와 중국어로 설명돼 있다. 기념관 가운데 안 의사의 흉상이 있다. 의거의 현장인 1번 플랫폼은 기념관 끝의 대형 통유리창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가로 2m 세로1.5m 크기의 유리창에서 5~6m떨어진 저격 현장엔 ‘안중근 격살 이등박문 사건 발생지’ 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있다. 기념관 쪽은 유리창 앞부분을 2m가량 돋워 현장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했다. 안 의사 저격 지점을 바닥에서 세모꼴로, 이토 피격 장소를 마름모꼴로 표시만 해둔 예전이나. 2006년 하얼빈 시내에 설치된 안 의사의 동상이 열흘만에 철거된 사건과 견줘보면 대단한 변화이다.
기념관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안 의사를 영웅 애국자라 일컬으며 경의를 표했다. “안 의사는 파시즘에 맞서 한국과 중국 민족 모두의 해방을 위해 의거를 행한 영웅이자 위대한 인물이다. 하얼빈 사람이라면 모두 안 의사를 안다” 며 그야말로 목숨을 던져 의를 추구했다” 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은 물론 중국인들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고 있는 안 의사의 가묘가 현재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다. 1946년 6월 김구 선생 주도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애국열사 묘역을 만들면서 안 의사의 가묘도 만든 것이다.
일본정부안의사기념관건립유감표명 스가관방장관기자회견서강경비난 한국과 중국이 연대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강경한 어조로 비난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이 2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중국 하얼빈역에 기념관을 개관한데 대해 “안중근에 대해 일본의 견해는 우리나라(일본)의 총리인 이토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은 테러리스트라는 것” 이라며 “지금 한중 양국에 누차에 걸쳐 우리 견해를 전달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 말했다. 스가관방장관은 이어 “안중근에 대해 일본과 한국이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고 있고, 지난 세기에 발생한 일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에 근거해 한중이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움직이는 것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않는 일” 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논평을 내 “이토히로부미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짓밟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해악을 끼친 원흉” 이라며“ 그 같은 몰상식하고 몰역사적인 발언을 한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본 지도급 인사들은 하루 속히 제국주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 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