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4·1만세 항쟁기념

안성문화원 ‘2일간의 해방’ 행사계획

 안성문화원(원장 양장평)은 제96주년 3·1절 기념식 및 안성4·1만세 항쟁기념 행사를 4월 2일 오전 9시부터 안성 3·1운동기념관에서 개최 한다고 밝혔다.

 안성시와 보훈처 후원으로 열리는 행사에는 안성4·1만세 항쟁 도보 행진을 시작으로 3·1절 기념식, 광복사 헌화 분향, 청소년 백일장을 비롯해 각종 체험 행사 및 기념공연이 진행된다.

 이번 행사 취지는 1919년 3월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에의한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어 읍내면에서도 만세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고 3월 31일에는 3,0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해 관공서와 군청을 응징했다.

 이보다 앞서 25일과 28일에 원곡·양성면에서 산발적인 만세 시위가 계속됐다. 죽산지역의 만세운동은 삼죽면에서 계속해 항거가 이어오다 4월 1일과 2일, 3일에는 극렬하게 전개되었다. 4월 2일 죽산장에서는 2,000여 명이 운집해 항거하다가 3명이 사망하였고, 4월 3일에는 2명이 또 사망했다. 같은 날 삼죽면에서도 만세운동으로 2명이 사망했다.

 단순 만세 시위가 아닌 실력항쟁은 4월1일 밤 2,000여 명의 원곡, 양성 연합시위가 만세고개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경찰 주재 소와 우편소를 습격해 불태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상과 고리대금업자 집을 공격했으며, 4월 2일 새벽에는 일제를 이 지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맞이했다.

 안성의 4·1만세운동은 평북 의주, 황해도 수안군과 함께 남한에서 유일한 전국 3대 실력항쟁지이고, 안성의 만세 운동은 역사적 의미가 다른 지역 비교해 남다른 것이기에 3·1운동 기념관이 안성에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안성지역의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있어 매년 4월 2일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자라나는 후세에 항일독립운동으로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규모 행사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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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 느티골 인근에서 지난 10일 오전 7시 40분께 24톤 탱크로리 한 대가 도로 붕괴와 함께 하천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차량을 운전하던 청년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닥터헬기로 긴급 이송됐다. 그는 과거 본인과 함께 독일 바이오가스 축산시설을 견학하며 안성 축산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누구보다 성실한 청년 축산인이었다.” 최호섭 시의회운영위원장은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단순히 ‘도로가 무너졌다’는 충격을 받았는데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다면 큰 공포와 분노, 그리고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고 덧붙여 말했다. “사고 당시 도로는 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 속은 이미 텅 비어 있었으며, 폭 2m 남짓한 하천변 콘크리트 농로는 기초 보강 없이 흙 위에 콘크리트 판을 얹은 단순 구조였고, 하중 분산이나 침식 저감 설계는 전무한 상태로 그야말로 ‘도로의 탈을 쓴 위험지대’였던 셈이다. 이번 사고는 상하수도관 누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도로 구조에 대한 사전 검토 부족, 부적절한 시공, 사후 점검 부재 등 복합적인 관리책임상의 문제가 겹쳐진 결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형사적 책임이나 행정상 과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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