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동부권의 활기찬 개발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급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종친회 묘역으로 땅을 기부해 당해 종친회는 물론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위인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선행의 주인공은 재경안성산악회 손원태 고문. 손 고문은 일죽면 출신으로 방초리 산 53의 1 소재 임안 1만1천 207㎡(약 3천 500평)을 가족과 가문 모두의 친목과 화합은 물론 조상에 대한 숭조정신으로 조건 없이 자신의 땅을 기부했다. 손 고문은 평해 손씨(平海孫氏) 통진현감공파(中始祖 26世 준(濬) 후손으로 40世인 손흥영(孫興榮) 선조가 충북 증원군(현재 충주시)에서 안성시 일죽면 방초지로 이주해 이곳에서 정착했다.
평해손씨 41世인 손병관 (孫炳觀)씨가 아들 4명을 낳았는데 그 중 셋째인 규동 옹의 장자가 바로 손원태 고문이다. 손 고문의 사촌의 장남인 문석공이 1968년 10월 25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친형제가 4명이 있었지만 장손의 손원태 고문에게 이 땅을 조건 없이 희사했으며, 손 고문은 이 땅을 40년 이상 보존관리 하다가 이번에 평해 손씨 일 죽파 규동공문 종산(山)으로 소유권 등기를 통해 공여해 종문들의 환영을 받았다.
손원태 고문은 이에 대해 “우리 후손들은 조상님들의 음덕을 항상 잊지 않고 찬양 하며 후손이 된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고 있다” 면서 “특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동기간에 우애하며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직 성실하게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현재 손 고문이 희사한 임야는 문중의 묘역으로 정성껏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종친간 상호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이보다 앞서 향토 교육 발전을 위해 부지를 무상으로 기증해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케 한 장학위인 고 손규동 석사의 높은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 제막식이 2007년 6월 3일 방초초교 운동장에서 이금영 교장, 안영법 동문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주민과 동문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방초학구내 지역주민과 방초총동문회가 공동으로 건립한 공덕비에는 손규동(孫奎東·음 1894년 3월 26 일~1974월 11월 2일) 선생께서는 일죽면 방초리에서 선친 손병관씨와 한산이씨의 4남1녀중 셋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유년시절부터 온순하고 겸손하며 덕망이 높으시어 주위의 신망을 받던 중 고은 방초리의 지역발전을 위해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을 업적으로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1961년 12월에 흔쾌히 대지 3천여 평을 희사하여 오늘날 우리 지역에 방초초 등학교가 건립되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선생께서 희사하신 토지로써 방초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공부하며 재능과 소질을 계발하는 꿈의 도장이며, 또한 지역 주민들의 체력 단련 및 심신을 수련하는 주민 화합의 장이되었다. 이를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손규동 선생의 고귀하고 ,높은 뜻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 기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 과 방초 동문들의 정성을 모아 공덕비를 세워 선생의 높으신 뜻을 영원히 잊지 않고자한다고 음각해 있다.
고 손규동 석사의 높은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는 방초초교가 개교하면서 세웠으나 작고 온갖 풍상에 마모되어 이번에 2m 크기로 다시 제작해 건립하게 됐다. 이날 손규동 석사의 장손인 손원태 재경안성산악회 고문은 답사에서 “지역주민과 동문들의 정성으로 공덕비를 새로 건립해 준데 대해 감사한다” 며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을 이 공덕비가 가문의 영예를 넘어 지역과 학교발전을 원동력이 되어 줄 것” 을 간곡히 당부했다.